불확실성의 대화 이승린 2021
뉴스에서 먼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흔적이나 고대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해당 이미지를 찾아 한참 들여다보곤 한다. 10만 년 전에 살았던 매머드의 대퇴부 뼈, 1500년 전 가야의 전사들이 사용한 항아리 속 조개껍데기, 430년 전 요절한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편지 등.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살지 않고 현실의 이면을 떠돌다 발견된 과거의 흔적들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Will o the wisp》은 이름 모를 고고학자가 과거와 미래에 말을 걸기 위해 만들어놓은 작은 실험실 같다. 추연신이 현장에서 채집한 사물들은 얼핏 보면 어떤 언어보다도 더없이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자료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은 모두 시간이 어긋난 장소를 경유하며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적 구성을 더 많이 닮았다. 그 이야기는 마치 눈에 보이는 증거를 손에 쥐고도 불확실성에 사로잡힌 학자의 끝없는 의심의 여정과도 같은 것이다.
불확실성만큼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지만, 또 이것만큼 질문을 발명하게 하는 힘도 드물다. 이와 관련해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떤 단상 위에 놓여있고, 그 단상 아래에는 코끼리가, 코끼리 아래에는 거북이, 거북이 아래에는 또 다른 무수한 거북이들이 연속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 ‘세계’라는 추상적 개념 아래에 다양한 시차로 흐르는 무수한 의미의 그물망을 설명하고자 든 예시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인류학자 뿐만 아니라 현장 한가운데서 회의와 의심으로 질문을 발굴해야만 하는 작가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시 제목인 ‘도깨비불’은 이 불확실성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도깨비불에 대해 묘사해보라 하면 아마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상상하는 도깨비불의 형상을 말하게 될 것이다. 인도 설화에 등장하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여러 명의 장님이 각자 만진 코끼리의 부위가 다르니 머릿속으로 그린 코끼리의 형상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의 흔적에 말 걸으며 발견과 발굴의 이유를 찾으려는 행위 역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세계의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두루뭉수리한 상(像)을 그려보는 것과 유사한 일인지도 모른다.
근래에 한 시집에서 이런 글귀를 보았다. “조금씩 어긋난 대화가 좋다. 다 이해할 수 없어서 존중하게 되니까.” 이현승, 『대답이고 부탁인 말』, 문학동네, 2021
언어의 불확실함이 갖는 힘을 잘 보여주는 문장인데 문득 작가도 이것을 잘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어긋난 장소에서의 대화란 매끄럽기가 어렵다. 어쩌면 시차 때문에 대화는 영원히 성사되지 못하고 공기 중을 계속 부유할지도 모른다. 끝없이 유영할 것만 같은, 그렇게 무한한 시간 속으로 파고들 것만 같은 과거와의 어긋난 대화에서 작가는 자신의 유한한 삶 속에 깃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고백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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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현승, 『대답이고 부탁인 말』, 문학동네, 2021
인류세의 아카이브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김민경 . 2019)
“인류세의 문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적 삶 모두를 인간이 아닌 것의 관점, 인간 중심이 아닌 어떤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기 시작 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변곡점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추연신 작가에게서 버드나무로 만든 펜을 받았다. 가느다란 가지에 잔가지가 여럿 있는 나뭇가지를 깎고 솜씨 좋게 다듬은 하얀 나무 펜이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무로 만든 펜은 나무가 아닌 무엇처럼 느껴지고 매끈한 표면은 하얀 뼛조각처럼 보이기도 했다. 직접 필기하는 것보다는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 것이 더 익숙한 요즘, 유목 펜을 써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이어리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펜을 잡고 쓰다 보니 이 나무의 유래가 궁금하다. 내게 온 버드나무 유목 펜은 작가가 동봉한 기록지에 따라 2018년에 청주에서 수집되고 2019년에 가공한 것이다. 그는 유목 펜에 그 기원에 대해 각각의 기록을 남겼다. 이를 통해 그가 걸었을 계곡과 강변, 해안에 대해서 그리고 나무의 기억에 대한 추적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유목펜 프로젝트는, 바다 또는 내륙, 계곡으로 이동하여 직접 나무파편을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수집한 나무 조각을 선별한 후 3-4회의 방부처리를 한 뒤 손질하고 다듬고 천공하고 볼펜심을 삽입하고 표면을 다듬는,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무려 15-20일이 걸리는 섬세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 유목 펜이다. 그는 이미 생명에서 떨어져 나온 유목流木을 채집하고 가공하여 새로운 쓰임새가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 다시 인공의 생명을 불어넣었다. 작가는 무수히 많은 공산품 속에 결합되어 있는 도구의 단순 기능을 재진단하기 위하여,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인해 생략된 “쓰기”를 통해 인간의 행동 속 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상징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유목이 가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지식 체계를 구축하고자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구상하였다고 정의하였다. 그의 유목펜 프로젝트를 통해 버려진 나뭇가지는 새로운 쓰임을 얻고 재생한 셈이다.
작가는 여러 해를 거쳐 유목을 채집하러 다니면서 바닷물에 떠밀려온 다양한 사물의 조각을 발견한다. 사용되다 버려진 사물의 파편들을 보며 이 조각이 얼마간의 시간을 거쳐 여기에 왔는지를 추론한다. 그는 부유하는 사물들이 흘러온 곳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그가 발견한 사물들을 [유목적 사물]이라 명명했다. 그는 그것이 흘러온 지점을 찾는 행위에 대해 유목이 내륙에서 바다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함이라 했다. 추연신이 채집하는 사물들의 공통적 특징은 어디에 쓰였을지 알 수 없는 ’파편‘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며, 여기서 작가의 관찰과 추론이 시작된다.
바다유목 작업은 내륙의 장소에서 발견되는 나뭇가지들을 줍고 기록하는 것으로 이어 진다.작품 [보호수]는 그 작업들의 일환으로 부러져 나온 가지들(유목)이 한때 보호수였을 것이라 가정한 작업이다. ’보호수‘라는 것이 희귀한 수종이나 오래된 나무를 보존하고자 하는 상징성을 가진 것을 생각할 때 이미 부러져 나온 유목은 보호수로의 기능을 상실한 존재이다. 유목이 온전한 상태였을 때의 환경과 본래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며, 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법의학적인 과정과도 닮아있다 말한다.
이후 그의 발길은 도시, 그 중에서도 재개발 지역으로 향한다. 부서진 폐자재들 사이에서 그는 타일을 발견하였고, 이를 선택한 것은 도시를 산책하며 자주 목격한 사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타일이라는 것은 도시가 확장되고 개발되며 한때 꼭 필요한 건축의 내외장재였으나 시간이 지나 건물은 부서지고 사라진 후 파편만 남은 것이다. 그는 타일과 같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그것들의 문화적 건축사적 연결고리를 유추하기 시작한다. 타일은 도시에서의 ’유목적 사물‘을 찾아 나선 그에게 가장 먼저 발견된 소재였던 것이다.
재개발 지역의 남겨진 잔해들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지만, 사물에 포함되어있는 사람의 흔적과 냄새를 일부러 제거한다는 점에서 추연신의 ’유목적 사물‘은 두드러진 차이를 가진다.
그는 마치 법의학자가 발견한 증거물을 토대로 다음 단서를 찾아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같이, 수집한 사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그 사물의 발생경로와 배경에 대한 추리를 시작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 그는 파편으로 남은 사물의 온전한 모습을 재구성 해낸다. 누군가가 사용했을 사물들에게서 개개인의 히스토리를 배제함으로써 감상에 젖는 것을 경계하는 작가의 객관적 시선은 다음 문장에 잘 요약되어 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드라마틱한 요소는 제한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휴머니티에 집중한다기보다 감정선과 거리를 두고 더 많이 보기위해 선택한 추론하기의 기초가 명백한, 객관적 도출을 하는데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연신, 인터뷰 중)
사라졌거나 기능을 빼앗긴 사물에 대한 그의 수집은 계속된다. 이를 통해 객관화된 사물은 개인의 것이 아닌 인류 전체의 역사 속 하나의 유물로 작용하게 된다. 그의 시선은 이제 제 자리가 아닌 낯선 곳에 놓인 사물로 향하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 역시 그의 발길 닿는 어느 곳에서 발견되는 사물에 대한 것일 것으로 추측해본다. 예민하고 찬찬한 관찰의 시선이 어디로 향할지 지켜볼 것이다. 그의 집요한 아카이브가 언젠가 인류의 삶을 추론하는 하나의 단서가 되는 것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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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상민, 김성윤, “물질의 귀환: 인류세 담론의 철학적 기초로서의 신유물론”, 문화과학,2019,p.68